2월의 일상.

2013년 4월, 지나가는 전달의 사진을 남겨놓고 싶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이달의 일상이 올해로 4년을 맞는다(짝짝짝). 2016년 바쁘다는 핑계로 한 해 내내 미루고 미루다 보니 오늘로 공식적인 「 작년의 일상 」 이 되었다. 고작 이전 30일의 일상을 돌아보는 일 보다, 작년의 이 시간을 들춰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냐며 나의 게으름을 두둔한다. 더 이상 재작년의 일상으로 밀려나는 일 없기를 바라본다.


미련 떠는 여행은 이달이 마지막이라 매번 다짐하지만, 언제나 계획 짧은 여정에는 불편함을 선택하고 만다. 인생의 반을 아끼는 것에 치중하고 살아온 둘의 16년 2월도 역시 그러했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 출발해 고속터미널의 패스트푸드점 자리 한편을 차지하고서 서로의 미련함을 타박한다. 꽃시장 사람들이 분주해지고, 청소부가 물걸레질을 하는 시간, 우리는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생존을 위해 허세를 겸비한 나와, 생존을 위해 허세를 버린 네가 만나 각자의 미련함을 뽐낸다. 몸상함을 개의치 않으며 돈을 아낀다. 시간을 버린다. 건강을 깎는다.

이어지는 일상은 이쪽 brunch.co.kr/@imadorable/52 에서.

여권 셋, 아들 둘, 엄마 하나 — 그렇게 후쿠오카

가끔 우리는 근사한 점심을 함께 하고, 가끔 우리는 즐거운 저녁도 함께 했지만, 가족 구성원 둘 이상이 가지는 다음날의 아침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15년을 그렇게 살았다. 셋 서울 모인 그해, 살아 본 적 없는 내 고향 후쿠오카에 그들을 초대했다. 일본 와 본 적 없는 둘에게 무엇을 안겨야 할지 몰랐으나, 그저 우리 둘 매달 갖던 식탁을 나눴다. 매달 가던 장소를 권했다. 호사로울 것 없는 내 동네, 내 음식, 내 고향의 시간들.

1월의 일상


배도 부르지 않았던 바다 건너 임산부를 보고 돌아온 것이 어느새 2월의 일이었다. 이름을 건내 받은지도 벌써 몇 달이니, 미루고 미뤘던 손가락을 놀려 1월의 일상을 엮는다. 반해를 훌쩍 지나 올해를 돌아보는 것이라 변명을 대어 본다.


태어난 시간은 알고 있나 물으시기에 모른다 대답하니, 홀로 밤기차 타고 부산에서 서울 올라와 공중전화 찾고 찾아 겨우 이모네 연결했던 그 날을 이야기하셨다. 이모할머니의 딸내미가 일하던 강남 성모 병원에서 났다며, 그 많은 외손주 중 하나의 출생 위치는 어찌 또 아시는지. 십 개월치 집세 10만 원을 미리 내고, 다음 장소 전세금을 위해 빌리고 메꿔 40만원 만든 여정 듣고 있자니, 어디 가서 집 좀 옮겨봤다고 말할 깜냥이 안되었다. 처음 나를 받으셨을 때, 너무 크고 너무 무겁고 너무 까매서, 너무 너무 못난 이걸 어쩌나 걱정했다며 웃으셨다. 용 된 것이 분명하다. 용 되었다 여기시면 충분하다.



접은 학을 솔 위에 얹으시고, 해 든다며 종이와 신문을 꽃 위에 얹으시는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잔소리를 하고 또 한다.

~뒷 이야기를 브런치(brunch.co.kr/@imadorable/51)에서 확인해 달라는 문구 참으로 염치가 없고,
정사각형에 짜맞춘 표지(instagr.am/especiallywhen) 덩달아 배알도 없어라~

내가 식을 올렸다.


네가? 응, 내가.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한다는 말 이전의 질문에 먼저 답해야 했다. 4년을 만났더니 으레 결혼에 대한 이야기 떠오르기도 했지만, 오래 만나고 싶다는 대답에 집요하게 파묻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왜?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없는 인생을 보인 보람인가, 친할수록 덧붙임 없이 대화를 마쳤다. 걱정이 간섭을 앞선 것인지, 상식을 핑계로 오지랖 얹은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고는 했다. 누구보다 늦게 할 줄 알았다던 그 네가, 어찌됐건 그 내가 결혼식을 올렸다.


함께 아랍권에 가게 될지 모르니 그럼 혼인 신고를 올릴까 했고, 취소된 후에도 계속할까 했고, 이사 날짜 가까워 오니 같이 살까 했고, 한국에 있을 테니 식 올릴까 했다. 가족들만 모일까, 장소는 어쩔까, 음식 종류는 어쩌나, 고민들 쌓고 모으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정원 있는 음식점에서 가족들 모인 결혼식을 열었다. 청첩장도 주례도 사진사도 없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드레스에 전날 사 온 구두를 신은 결혼식이 열렸다. 말 꺼낸 후 삼 개월 만의 일이었다.

좌판을 펴고 서로의 가족을 꼽아보니 오십이었다. 치우친 가족의 40세 이하 소년 소녀를 제외하고 나니, 한쪽에 이십씩 양가 모두 사십이 되었다. 인원을 얼추 추렸으니 문제는 공간이었으나, 주말 발품 두 번 하니 장소가 정해졌다. 정원이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말만으로도 비현실적인 이 결혼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어쩐지 사치가 아닐까,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고민은 축하한다는 말보다 먼저 나오는 잘했다, 잘했다, 로 채워졌다. 캐나다에서 서울에 들어온 지 벌써 5년. 고마움 투성이의 어른들에게 조그마한 선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그 보답이 세 시간의 효도로 한 뭉치를 갚았다. 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내가 더, 내가 더, 고맙다는 말들로 채워졌다. 이렇게 고마워하는 사람들 가득하니, 그만으로 결혼한 보람이 보였다.


참,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피치를 했습니다.

저희는 처음 공항에서 둘의 얼굴을 보았고, 배 타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전화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여정이 여러 나라를 거치고 나니 올해로 사 년을 맞았습니다. 여름에 만나 여름을 셋 보내고, 이렇게 네 번째 여름에 식을 올리게 되네요. 5년 전, 어쩌다 정착한 서울은 대림이었고, 우연히도 걸어서 십오분 거리는 어머니 댁이었습니다. 반찬을 핑계로 만나기 시작하니 주말이면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고, 다 같이 앉아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 술 따르고 있으려니 어쩐지 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뵙는 자리에서 상견례라는 단어 없이 차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식에 대한 것은 거진 언급도 없이 그저 어머니들 살았던 이야기, 우리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어쩐지 또 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로가 처음 만나 연애를 하며, 서로의 살아온 모양이 겹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또 알아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조금씩 다른 부분들을 사 년 동안 맞추고 고쳐가며 쌓았더니, 이제는 배고플 것 같은 시간에 미리 씨리얼 바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둘이서 손을 잡고 동네 산책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지금의 우리로, 아침에 일어나 부은 얼굴 보며 어이구 어이구, 할 수 있는 우리로, 주말마다 방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뛰노는 그런 우리로 오래오래 지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늙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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